책 속으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해미일 2024. 7. 2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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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6.23

 

1. 그럴법한 이야기와 확실한 진리 - 인문학과 과학

2. 나는 무엇인가 - 뇌과학

3.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 생물학

4. 단순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 화학

5.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 물리학

6. 우주의 언어인가 천재들의 놀이인가 - 수학

 

  유시민 작가는 어느 방송 매체에서 스스로를 '지식의 소매상'이라고 이야기 했다.

어떤 학문 분야를 연구해서 그 결과를 내기에는 무리가 있어 

이미 연구된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그렇게 표현했다.

 

최근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읽은 나로서는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를 읽고 저자의 지식 습득력과 전달력에 감탄했다.

같은 책을 읽었어도 난 내가 이해한 부분을 독자에게 이렇게 명쾌하게 전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해력으로 녹여낸 과학적 사실을

제법 익숙한 인문학적 언어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나의 한국 현대사', '역사의 역사', '거꾸로 읽는 세계사', '어떻게 살것인가' 등

내가 본 유시민 작가의 저서이다.

그의 글에서는 세상을 보는 탁월한 통찰력과 따뜻함, 그리고 솔직함이 느껴진다.

이번 책에서도 역시 그러한 문체가 돋보인다.

자신의 태생적 문과 성향과, 과학 분야에 관한 편협했던 생각들

그래서 무지했던 것들에 대한 신랄한 고백부터 시작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과학 영역에 대하여

지식의 소매상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인문학에 천착했던 자신이 어떻게 과학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와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바라보는 진리 탐구에 관하여 비교하였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p.31)

 

<인문학과 과학>

어떠한 사실에 관하여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시선은 많이 달라보인다.

작가는 인간 지성사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지만

과학이 인문학에 끼친 영향이 더 지대한 것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과학자가 더 훌륭해서라기 보다는 사고의 차이인듯 하다.

과학자는 입증되지 않은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고

진실에 가까운 것도 완벽한 입증이 없으면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인식하는 반면에

인문학자는 모르는 것이나 좀 애매한 것도 그들 만의 언어로 돌려말할 뿐

모른다고 하지 않는 것

또 과학은 연구 분야가 수없이 세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학문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통의 진리를 추구했던 반면  

인문학은 분야 간의 통섭이 어려웠던 점

이러한 특성으로 과학과 인문학은 각자 발전 결과가 달랐고

과학은 인문학을 포용할 수 있지만, 인문학은 선뜻 과학 쪽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알고자 했던 인문학이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인문학의 위기라고 했다. 

 

과학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철학자는 모른다는 말도

무언가 아는 것처럼 한다. (p.68)

 

<뇌과학>

과학과 인문학은 내 존재에 대한 질문부터 다르다.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보면 나는 온 우주에 딱 하나뿐인 존재다.

나와 똑같은 배열의 원자 집합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p.47)

 

우리는 대략 1.4킬로그램 뇌에 수 많은 신경세포와 신경전달 물질을

가지고 있으며 뇌의 부분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도 알지만,

현재 극히 일부의 정보만 알아낸 상태이다.

그 속에 우리의 생각과 자아가 깃들여 있다.

저자는 과학 공부를 통해 나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해하기 어려웠던 칸트의 인식론을 뇌과학과 양자역학을 접한 후에

그나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렵게 말하는 인문학자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칸트는 그런 인문학자 리스트의 맨 위에 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깊이 탐구한 것만으로도 존경하기에 충분하다.

시대를 초월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p.78)

 

인문학만으로 알기 어려웠던 영역이 과학을 통해 이해되었다고 해야할까?  

이렇게 과학적 사실들이 인문학적 토대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 와중에 인문학이 과학적 사실을 오해하고 오용한 사례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경제학의 '한계생산력 분배' 이론인데

이것은 사람의 일을 자연법칙에 대비하여 설명했던 오류이다.

 

사람의 일을 자연법칙의 몫으로 돌린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어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원 평균 연봉의 1,000배를 가져가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연봉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지

생산에 1,000배 더 기여해서가 아니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똑같은 작업을 하는 원청 소속 노동자의 절반 수준 시급을 받는 것은

중간착취와 불평등을 허용하는 제도 때문이지 생산 기여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의 오류는 신경세포의 작동 원리를 물리법칙 형식으로 만들어

신경세포와는 무관한 경제현상에 적용한 데서 생겼다. (p.62)

 

사람의 이타적인 행동과 맹자의 사단 중 측은지심(惻隱之心)같은 것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와

뇌과학의 '거울신경세포'를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자아와 자유의지는 무엇인가?

인간의 자아는 확고부동한, 불변의 그 무엇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신념이 변하거나 가치관의 전향이 일어나는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닌 노화로 인한  호르몬 변화나 신경체계 문제 등

생물학적 이유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인문학 보다는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이

전향이라는 행위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p.94)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p.99)

 

<생물학>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의 내용이 주로 인용되었다.

'모든 종은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다'는걸 믿는 것이 '다윈주의'라고 한다.

 

모든 생물의 DNA가 동일한 알파벳으로 씌어 있다는 사실은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하는 유전학의 증거다. (p.119) 

 

다윈주의는 생물학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 것으로 부터 많은 이론과 법칙이 파생되었다.

 

사회다원주의 & 우생학

다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원리를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요약한 '사회다원주의'와

열등한 개체를 제거하여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는 '우생학'이 합쳐져

전체주의, 인종차별, 노예제도, 홀로코스트를 합리화 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우파는 진화론을 오독하고 악용해서 사회다원주의와 우생학을 만들었다.

좌파는 다윈과 다윈주의를 싸잡아 배척했다. (p.115)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은 유전자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에 의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되었다.

저자는 이 법칙이 호모사피엔스의 행동 양식에도 적용 가능한

사회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난 공산주의 실패 원인을 호모사피엔스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마르크스의 상상이라고 늘 생각해 왔었는데 여기서도 그 부분을 짚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노동하고 분배받는 세상을 상상했지만

그는 틀렸다. 호모사피엔스가 있는 곳엔 반드시 잉여 생산물을 차지하기 위한

서열이 정해졌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산당은 그 어떤 지배계급 보다 혹독하고 불의하게

민중을 착취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부 자본주의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ESS(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이론을 가지고

사회주의 내에서 인간 행동양식을 대입하여 입증하고자 했다.

열심히 일하거나 그렇지 않으나 보상이 똑같이 주어진다면

'성실'과 '태만'이라는 전략 중에 어떤 것이 생존에 유리할까?

공산국가에서의 '성실'은 늘 손해만 보기 때문에 '태만'을 선택해야 이득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전체가 '태만'을 선택한 국가는 망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어떤 방법이 우세하여 득세하지만, 곧 공멸의 길로 접어들기 때문에

그런 경우 다시 '성실'이 득세하면서 결국 어느 시점에 가장 안정적인 비율로

유지된다는 것이 ESS(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다.

그래서 소련은 미국과 싸우다 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게임이론.동물행동학.유전학 등 여러 학문의 도구와 문제의식을 결합한

ESS 모델은 사회제도의 구조와 결함을 진단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p.147)

 

이타행동 또한 생존에 유리한 쪽을 선택하면서 유전연관도가 높은

혈연이타주의로부터 먼 친척으로 퍼져나갔고 비혈연 이타주의 또한 결국은

그것이 개체에게 유리한 지점이 있어서 라고 한다.

 

<화학>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든 또는 자연 현상으로 생성되었든,

세상에서 물질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현상들은

화학 작용이다.

예를 들어 수소와 헬륨은 오늘 날의 지구를 만드는데 중요한 원소였고

탄소와 산소는 원시 지구에서 생물이 탄생하기 까지 없어서는 안될 원소이다.

일상 생활에서는 물, 공기, 소금이 생성되고 소금이 물에 녹는 과정까지

모두 화학적 작용의 결과다.

지구 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졌고, 이것들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이

전자라고 하는데, 인간의 몸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질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들이 결합해 물질의 분자를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p.171)

 

원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물질을 이루는 것, 우리 몸이 생존에 필요한 화학 공정을

가동할 수 있는 것이 다 전자 덕분이다. (p.174) 

 

단순했던 최초의 생명체는 자연선택이라는 필연과 유전이라는 우연을 통해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 (p.184)

 

과학은 미시세계를 들여다 보기위해 점점 더 세밀한 이론과 관측방법을 발전시켰다.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환원주의는

과학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동시에 지식의 분절과 파편화를 가져왔다.

연구 분야는 수없이 쪼개져 어떤 사실 전체를 조망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예를들어 코끼리의 각 부분을 잘게 쪼개어 깊숙히 들여다 보긴 했어도

코끼리 전체를 한 눈에 담기 힘든 것이라고 해야할까?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의 진리를 위해 학문의 세분화된 경계를 초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환원주의를 뛰어넘는 그것을 '통섭'이라고 명칭했다. 

이러한 통합의 진리를 이야기한 지식인들은

에드워드 윌슨, 윌슨의 책을 번역한 최재천 교수, 슈뢰딩거 등이 있다.

그러한 일환으로 인문학에 과학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노력한 지식인들은

파인만, 칼 세이건, 브라이언 그린 등이 있다.

과학분야는 '통섭'이 잘 이루어지는데 비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통섭'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답을 찾으려면 크고 복잡한 세계를 작고 단순한 것으로 끝없이 쪼개야 한다.

과학의 역사는 환원주의 연구방법론의 위력을 결과로 증명했다.

학문이 끝없이 작은 단위로 갈라진 것도 환원주의 연구방법론과 관계가 있다. (p.198)

 

환원주의가 추동한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 현상은 인문학과 과학을 가리지 않았다. (p.199)

 

통섭은 환원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지식을 통합하는 것이다. (p.201)

 

통섭은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전체를 꿰는 '범학문적 접근'을

요구한다. (재인용구 - p.201)

 

<물리학>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미시세계와 우주세계의 법칙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 설명되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러한 물리법칙에 의해 구현되고 활용되는 것들이 많았고,

대표적으로 자동차의 '네비게이션'과 항공기 '위성항법장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놀라웠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은 지구를 벗어난 곳에서는 오류가 발생하여 적용할 수 없고,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물리에서는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야 계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시간과 속도, 물질의 질량이 지구와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인듯 하다.

아인슈타인에게 감사한다.

 

양자역학은 우주를 둘로 갈랐다. 고전역학의 결정론이 지배하는 거시세계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이 존재하는 미시세계로. (p.217)

 

물질 세계의 일부인 우리 인간의 근원 또한 우주 빅뱅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된다.

놀랍게도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지구 밖에서 왔다고 한다.

우주배경복사로부터 알아낸 우주 빅뱅과

그로부터 별(태양)과 행성(지구)과 생명체가 탄생한 가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신빙성 있는 설명이다.

 

물질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법칙은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과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종말에 대한 가설 원리이기도 하다.

엔트로피라는 것을 쉽게 표현할 때 '무질서 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으며

엔트로피가 낮다는 것은 질서 정연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질서 상태 즉 저엔트로피 상태는 어떤 힘의 개입과 작용에 의해서 유지되므로,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원자 배열은 현재 저엔트로피 상태이지만,

머지않아 고엔트로피 상태로 전환되며 그것은 물리적 이치이다.

 

저자는 '이기적인 유전자'와 '엔트로피 법칙'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안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기적인 유전자를 통해 나는 소멸해도 내 유전자는 계속 전파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며 저엔트로피 상태에서 고엔트로피 상태로 전환되어 내 원자가 무질서로

흩어지는 건 모든 세상의 이치로서 그것을 벗어날 존재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명부터 우주까지 영원한 것은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또 다시 장자철학을 떠올렸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르며 했던 장자의 말이

떠돌던 기운이 우연히 모여 형체를 이루고 이 것이 때가되어 흩어져 되 돌아간 것이므로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별의 적색이동은 빅뱅과 우주 가속팽창 가설을 뒷받침하고

이것은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우주의 종말을 다음 세 가지로 예측하게 한다.

빅 칠(Big Chill - 열 죽음), 빅 크런치 (Big Crunch - 대 함몰), 빅 바운스 (Big Bounce -

대폭발과 대 함몰 반복) 엔트로피는 우주의 묵시록이라고 표현되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고 그 의미는 각자 만드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수학>

대부분의 위대한 물리학자는 수학에 능통했다고 한다.

과학적 사실은 관측과 실험, 수학적 증명으로 입증되므로

과학자들은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겼다.  

 

하디는 '하찮은 수학은 유용하지만 지루하고,

진정한 수학은 아름답지만 무용하다'고 주장했다. (p.263)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에라스토테네스는 '하찮은 수학'인 기하학과 산술로

지구가 구형인 것과 그 둘레를 알아냈다고 한다.

유클리드와 데카르트의 수학은 당시에는 '진정한 수학'에 속하였지만

오늘 날에는 학교 수업으로 배우다.

수학은 한번 입증되면 진리의 불멸성을 가진다고 한다.

수학적 증명은 그런 것이다.

수학천재 가우스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만들어서 지구표면의 곡률을 0으로 본

유클리드 기하학이 증명할 수 없는 중력으로 공간이 휘는 우주를 설명했으며

힐베르트는 수학이 '완전하고 모순성이 없다'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지만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깨졌다.  

역사가 기억하는 천재형 수학자는 페르마, 오일러, 갈루아, 라마누잔, 리만, 칸토어,

에르되시 팔 등이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와일스는 노력형 수학자라고

한다. 아무튼 이들은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천재들이다.

 

수학은 어떤 학문인가?

힐베르트에 따르면 기호와 논리로 하는 천재들의 지적 유희이고 

갈릴레이에 따르면 물리적 실재를 서술하는 우주의 언어다.

...하디의 말로 옮기면 하찮은 수학은 진정한 수학의 부분집합이다. (p.278-279)

 

저자는 책의 말미에 다시한번 과학 공부를 한 후 느낀 인문학의 한계에 대해 짚었다.

그리고 더 일찍 과학공부를 시작하지 못했음에 아쉬움을 느낀다.

 

과학에는 옮은 견해와 틀린 견해, 옳은지 틀린지 아직 모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인문학에는 그럴법한 이야기와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p.292)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울림이 컷던 내용은 삶의 의미에 관한 말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내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내 삶의 의미는 내가 부여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것이 인문학적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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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데 없는 사색

우리는 전 지구적으로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생각과 상상과 협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과학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모든 생명체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그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 결말을 예측할 수도 없다.

유시민 작가가 다른 책에서 언급했듯 호모사피엔스의 결말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구는 결국 태양의 소멸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테지만,

인간은 그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그 무엇을 막지 못할 것이며

그것이 생태계 파괴이든, 핵폭탄이든, 인공지능이든

의도치 못한 역습으로 생각보다 빨리 멸절할 수 있다.

 

내가 독후감 말미에 비관론적인 이야기를 끄적거리는 것은

작가와는 좀 다르게 나는 과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과학의 긍정적 측면 보다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고

그것은 누구도 손 쓸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우울한 결말에 도달하곤 했기 때문이다.

긴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지구에서

인류의 역사, 그리고 나의 삶은 티끌 조차도 될 수 없는 찰나인데

하루하루 죽어가는 유한한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래도 곧 망각 속에 훌훌털고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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