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교재에서 다뤘던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생소한 표현과 이 책을 쓴 작가가 라틴아메리카 '붐' 소설을 대표한다는 정도의 정보만을 접한 상태에서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작가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잘 와닿지 않았다.
백여 년에 걸쳐 이어지는 한 집안의 가족사가 결국 예사롭지 않은 집시가 기록해놓은
양피지 속에 소상히 담겨있었고, 그들이 존재했던 마을은 이 지구상에서 아무도 기억할 수 없이 소멸한다는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 첫 부분부터 등장하는 집시 멜키아데스는 부엔디아 가문의 처음과 끝을 모두 다 알고 있었으며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난 가족사를 암호화시켜서 양피지 원고 속에 예언으로 기록해 놓았다.
결국 그것은 몇 세대를 지나 가문의 후손인 아우렐리아노에 의해 해석되는데
그는 이모인 아마란타 우르슬라와의 근친 관계로 인해 부엔디아 가문의 저주로 인식되는 돼지꼬리 달린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인물이다.
아마란타 우르슬라와 조카인 아우렐리아노는 그들이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사랑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인해 돼지꼬리 달린 아이를 낳게 된다.
불행히도 아마란타 우루슬라는 출산 후 하혈이 멈추지 않아 죽게 되며 그들이 낳은 아이 또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방치되어 체내에 물기가 다 빠진 모습으로 껍데기만 남은 채 죽게 되는데 끊임없이 인간의 영역을 위협하던 개미 떼가 아기의 시체를 자기들의 소굴로 데려가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 묘사된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아우렐리아노는 비로소 멜키아데스가 기록해 놓은 글귀를 깨닫게 된다. '역사의 시초는 나무와 연결되어 있고, 종말은 개미들에게 먹힐지니라'
그 순간 그는 미친 듯이 멜키아데스가 남긴 양피지 속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고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리오하차를 습격한 것이 이모와 자기가 미로 같은 운명 속에서 서로를 찾아내어 가문에 종지부를 찍을 전설적인 동물을 태어나게 함이었음을 순간 이해해 버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결코 멜키아데스의 방에서 나갈 수 없으며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없어지게 될 것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100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라고 양피지 속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피지 속의 예언, 아니 한낮 집시가 적어놓은 운명의 줄거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한 가문의 소멸과 그 모든 역사를 품고 있던 마콘도가 인간의 모든 기억 속에서 잊힌다는 마지막 부분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책의 마지막을 모두 읽어버린 나는 다소 난감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제국주의 침탈과 강권에 의해 자행되는 모든 불합리성과 공포에 대해,
또 그들에 의해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되어야 했던 평범한 개인들의 비극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민중은 위대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너무나 쉽게 그들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지배자들의 왜곡에 순응하고 희롱당해 왔으며 그러한 역사는 자꾸만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민중이라 부를 수 없는, 무지와 망각 속에 사는 대중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권력자들은 그들의 잦은 기억상실을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이용해 왔다.
책 속 마콘도에서도 미국인들이 경영하는 바나나 농장이 마을에 들어오면서부터 재앙의 조짐이 시작된다. 이윤에만 눈이 먼 기업주는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그 과정에서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교묘하게 탄압하며 결국 어느 날 광장에 모인 그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기관총을 난사해 버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희생된 3,0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을 기차에 실어 바다에 내다 버리는데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증언하지만 국가는 철저히 사건을 왜곡하고 차단하여 그 일은 곧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소멸한다.
진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무리 떠들어보아도 그들은 그냥 미친 사람들일 뿐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너무나 처참하고 잔인한 에피소드들이지만 정작 작가는 한 시대의 잔혹사를 무심히 품고 흐르는 시간처럼 아무런 감정도 개입시키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어떤 책에서 박완서 작가가 쓴 표현이 떠오른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조되는 역사의 씨실과 날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무늬로 그려지게 될까? 머 대강 이런 표현이었던 듯하다.
민초들의 일상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권력에 의해 이리저리 치이며, 삶의 숱한 옹이를 품고 굴곡진 길을 가야 했었으니까
인간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계급이 발생되었고, 거기엔 반드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어 왔지만 모든 시대마다 지배자와 민중의 관계는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권력의 횡포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잘못된 역사의 방향 키를 돌려세우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던 민중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콜롬비아나 우리나라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제국주의를 경험했었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자행되는 국가와 지배세력의 폭력성에 대해 배웠다.
권력은 그들에게 유리한 가치판단에 따라 무자비한 방법으로 민중을 학살한 후에 그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고 함구하면서 국민의 망각을 이용하려 들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이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물론 내 자의적인 느낌이나 해석일 수 있지만...저자가 의도하든 아니든 독자가 받아들이는 것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니까
어쨌든 목표했던 책을 다 보았고, 나름 느낀 점도 있었다는 것에 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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