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표지 (일부)
733페이지에 달하는 리영희 선생의 '대화'를 읽고 나서...
벅차고 복잡한 감정의 여운이 남아 어떻게 독서후기를 풀어야 할지 아득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이 땅의 모든 이의 사상적 은사로서의 삶
그 험난했던 한 지식인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아홉 번의 연행, 다섯 번의 기소(기소 유예 포함), 세 번의 징역, 해직과 복직의 반복
시대의 깨어있는 지성으로 그가 겪어야 했던 고초였다.
지성인과 지식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선생은 그의 책 서문에서 지성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단순 기능적 전문가로서의 '지식인'이 아니라 시대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으로 일체화시키는 것"
즉, 지식인은 기술적으로 습득한 지식을 자신을 위해 쓰고, 지성인은 자신이 속해있는 크고 작은
사회적 공동체를 위한 사회 정의를 위해 쓴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민주화 역사에 커다란 궤적을 남기신 분을 나이 오십에 안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선생은 우리가 불의한 강대국이나 독재권력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할 때마다 진실을 알리고자 행동하셨다.
선생이 자신을 내어주며 나누어준 진실의 토양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한 후학들이
어느 순간 거짓과 불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 유시민, 조정래, 황석영 작가를 비롯하여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모든 진보적 사상가들이
한목소리로 스승으로 꼽는 이유이다.
그들이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각성했듯이,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랬다.
그동안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허구와 내가 적대시했던 것들에 대한 반전들
누군가 던져준 것들을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의심해 보지 않았던 무지를 반성하였다.
각성하고 나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선생의 글을 접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소감이었고, 나 역시도 그랬다.
나를 각성시킨 것들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필요성이다.
내 나라, 내 민족, 내가 속한 문화를 아전인수 격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선생은 다음과 같은 논지로 외부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직시하길 권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과 분열, 그 와중에 각 진영 내부에서도 거의 적대관계와 다름없는
분열 대립. 갈등. 중상모략이 되풀이됨. 해방 후에도 민족의 총체적인 에너지가 분출했을 때 이를 대국적으로 묶어
나갈 지도력 없이 처절한 민족 내부의 분열. 갈등이 연출됨. 그것 때문에 미국에 이용당하고 미 군정하에 친일파가
득세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급기야 이승만의 분할지배 음모 공작에 기회를 제공하여 민족이 분단됨.
4.19 직후에도 미국에 의한 군부독재 정권을 허용하고 그런 박정희 폭력정권 18년 이후 20년 만의 기회였던
1980년 '서울의 봄'에도 민주세력은 분열과 대립의 지리멸렬한 모습으로 또다시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을 허용함
그들 극우. 반공. 폭력. 반인도적 집단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말살 및 미국의 사주와 적극적 비호 아래 군사정권을 지속
했음, 이후 민주화 세력은 김대중, 김영삼의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또다시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킴」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전개를 고려해 볼 때 민족의 비극을 외부 세력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으므로,
냉정하게 제3자적인 시각으로 우리 민족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를 놓고 볼 때 명나라와 청나라의 외부 공작과 음모의 책임으로 전가,
식민지 일본 치하에서는 일본 식민지 통치의 교활한 공작 탓,
해방 후의 반세기에 걸친 불미한 정치행태는 미국이라는 외세의 음흉한 배후 조정 책임 등
분명히 우리 역사에 그런 불행한 요소들이 크게 작용했지만 불의한 외압이나 흉계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민족적 면책론으로 기울지 말고 자기 민족의 결점도 시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진정한 우방은 없다는 것이다.
강대국들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싸움과 철저한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 정책으로
우리나라 등 신생 독립국이나 약소국들을 자신들의 헤게모니 싸움에 편입시켰다는 것
선한 탈을 쓰고 전 세계에서 악의 한 축을 이룬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것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라틴아메리카 침공, 대 소련 정책, 이라크 전쟁과 세계 문제 전반에 걸친
미국의 불의한 행보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셋 째,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속성을 알게 되었다.
광적인 반공교육과 국우 세력에 의해 날조된 베트남 전쟁사, 중공 혁명, 우리나라의 분단 과정 등
미국과 남한의 독재 정권이 정치적 도구로 삼아 왜곡했던 역사를 철저히 검증하여 밝힌 진실에 대해서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얄팍하게 배웠던 역사적 사실과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알게 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은 우리의 분단 과정과 닮아있어 매번 안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처절했던 8년 동안의 프랑스와의 제1차 베트남전쟁이 종결되고, 1954년에 제네바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서 2년 후인 1956년에 남북 베트남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되었으나,
1년 후 미국이 돌연 남북 베트남 총선 실시를 거부하여 베트남 민중의 염원을 외면한다.
미국은 꼭두각시 '고딘 지엠' 가톨릭 주교를 이용해 남베트남 정부를 수립하게 하여 민족분단을 획책했다.
이러한 미국의 개입으로 제2차 베트남전쟁이 발발하고 통일을 염원했던 베트남 국민들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는 한반도의 통일 독립정부 수립을 공약했던 미국이 1948년 미국의 꼭두각시 이승만을 데려다가
남한에 단독 정부를 수립하게 하여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켰던 것과 같은 약소국 지배의 방법이다.
미국이 돌연 베트남 총선을 거부한 이유는 남북 베트남을 통틀어했던 설문조사에서
북쪽의 호찌민(호지명)이 83프로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베트남에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짓을 저질렀지만,
결국 제2차 베트남 전쟁에서 민중의 압도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호찌민 정부가
강대국 미국을 이기고 통일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베트남의 공산화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어떠한 민족이 자기 나라의 정치이념을 공산주의 또는 자본주의로 선택하여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것은
그들의 선택인 것이지, 그것을 강대국들의 이데올로기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자주독립이 어떤 국가의 형태이든 그것은 그 민족이 결정하고 책임질 사항이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베트남 민중이 개혁적이고 청렴했던 북베트남 정권을 지지하고, 그 지도자인 호찌민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권리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지 외부 세력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원조를 받았던 이승만 정부의 부패한 친일세력처럼 남베트남 정권도 외세와 결탁한 부패한 정부였다.
북베트남 호찌민 정부의 지도자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했던 개혁적 인사들이었던 반면,
남베트남의 지도자들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외세와 결탁한 부정부패 세력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꼭두각시 부패 정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과정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은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 부패 정치와 민중 탄압을 일삼았고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개혁과 민중을 위한 정책으로 농민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베트남과 중국의 경우 철저한 자정작용을 통해 개혁적이고 애민정신이 강했던 세력이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결국 이겼지만, 유독 우리나라만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부패한 친일세력이 사회 기득권을 형성하고 지금까지도 그것이 견고하게 유지되어
국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음이 통탄스럽다.
친일 독재 정권의 정치적 목적으로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것들의 이면에 존재했던 진실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공 혁명, 베트남 전쟁, 한국의 분단 과정을 통해 본 사실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처음 태동했을 때는 적어도 우리가 배웠던 불의한 세력이 아니었으며,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때로는 민중을 위한 사회 개혁에 앞장섰던 면이 있었다는 것과
반면 미국의 원조를 받아 수립된 소위 자유민주주의 정권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외세와 결탁하고 때로는 민족에 대한 반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해방 후 미 군정 하에서 일제 강점기 친일 기득권 세력이
사법부, 교육부, 공무원, 경찰과 군 조직할 것 없이 사회 전반부의 지배계층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독립 투쟁을 했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빨갱이로 몰리며
일제에 부역한 친일세력에 의해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옹호하려는 궤변이 아니라 철저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증명된 부분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역시 마르크스 사상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변질되면서
공산당 일당독재라는 무자비하고 강력한 기득권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결국 사피엔스의 유전적 이기심을 간과했던 마르크스의 이상주의는 실패했다.
그러나 냉전의 양극단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 초기 좌파로 구분되었던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우파보다는 정의로운 가치 실천으로 민중의 지지를 받았음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중국처럼, 북한처럼, 베트남처럼 민족적 혁명을 이루어내지 못했는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왜곡으로 이익을 얻었던 정치집단과 미국이란 나라의 불의했던 행적을 알아야 한다.
불의한 세력이 그들의 목적과 수단으로 던져준 시각에 매몰되어 내가 속한 사회적 현상들을 수동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시대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정치집단의 수단과 도구로 전락하는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패한 정권이나 부패 언론의 기사가 아니라 진실을 탐구하고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지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깨어있는 시민으로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에게 주권이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현대에는 완전한 공산주의 국가도, 자본주의 국가도 없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으로 인해 이기적인 이익 창출 본능과 탐욕적인 소비욕구가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성 상실, 인간소외 현상, 잉여생산물의 처리로 인한 전쟁 욕구
사회주의는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을 무시하고 인간 중심의 사회복지 정책을 중요시하므로
자본주의와의 양자 구도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사회민주주의 같은 절충주의가 그나마 가장 이상적인 복지국가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도 경제는 자본주의 형식을 택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복지는 사회주의 모델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점차 절대적인 정치.경제이념이란 것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통일의 기회가 왔다면,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민족의 분열로 인해 우리에게 온 통일의 기회를
우리는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근현대사의 왜곡과 이데올로기 전쟁 속에서 리영희 선생은 독재 정권과 극우세력, 미국이 국민을 기만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진실을 알렸다.
* 국가보안법 없는 90년대를 위하여 :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의 허구
* 릴리 주한 미국 대사에게 묻는다 : 미국은 '광주사태'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 미국이라는 사회와 국가 : '악의 약자'와 '선의 제국'이라는 흑백논리
* 1953년에 체결한 '한. 미 방위조약' 해부 : 한. 미 예속 관계의 본질과 구조
* 사회주의는 끝난 것인가? 자본주의는 이긴 것인가?
* 수교 협정에 앞서 베트남 인민에 먼저 사과하라
* 민족 통일의 세계사적 인식
* 동. 서독 기본 조약과 '남북기본합의서' 비교 분석
* 조. 미 핵 및 미사일 위기의 군사정치학
* 소위 '서해 북방한계선'은 합법적인가? : 진실을 알고 주장을 하자
* 미국 군사동맹체제의 본질과 일반 성격 연구
* 동북아 지역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제언
'광주항쟁'의 배후로 지목된 미국의 입장에 대해 주한 미국 대사가 신문에 올린 글에
선생이 반박문을 올린 적이 있는데 상당히 통쾌하고 논리적 이서 인상 깊게 읽었다.
한국 학생들의 미국에 대한 저항운동이 한창 표출될 때 이에 대해 릴리 주한 미국 대사가 학생들의 행위에 대해
'히트 앤드 런' (치고 빠지기) 식의 '비겁한 수법'을 쓰고 있다는 비난에 대한 반박 글 중 일부를 소개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히트 앤드 런'은 미국 서부 활극에서처럼 등 뒤에서 쏘는 것을 금기로 삼는다는 소위 미국의
'영화 윤리강령'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미국인들이 서부를 점령. 통치하던 시기에 인디언들에 대해서 결
코
공정하지도 정정당당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강대국이므로 상대방들을 '히트'하고 나서 '런'할 필요
가 없기
때문에 '런'하는 사람들을 모멸적인 시선으로 비난하는 것은 강한 자의 논리일 뿐이다.
어째서 지구상에 그렇게 많은 테러가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서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지금 한국 사태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과의 투쟁방식은
'히트 앤드 런'인데 미국은 그들의 방식을 비난하지만, 미국이 후진국 국민들이나 약소국 국민들에 대해서 공평하고 정의
롭게
행동한다면 미국인들에 대한 테러행위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강대국인 미국은 '히트'하고 난 다음에도 그 자리에 머물 수가 있지만 약한 자들은 미국을 '히트'하고는 '런'할 수 밖에 없
다.
이 두 행동양식 사이에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오직 미국은 강하고 상대들은 약하다는 것 뿐이다.
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파나마 등 라틴아메리카의 그 나라 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국인들은 그들 나라에서 벌이는 미국의 행동을 알고 있으며 당신이 주장하는 한국인들의 미국에 관한 '오해'는
미국이 그런 행동방식을 바꿀 때에 비로소 소멸될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공정과 상식'이 판치는 불의한 최근에 정치 세태를 보고 있노라면
리영희 선생의 부재가 더욱더 안타까워진다.
지금 계셨다면 아둔하고 가련한 민족을 기망하고 유린하는 현 정부에 대해서 매섭게 일갈하셨을 텐데..
또한, 총보다 날카로운 지성의 펜으로 사회의 부도덕하고 불의 한 것들에 맞서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글로서
우리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을 텐데...
역사적 진실에 각성하고, 깨어있는 시민으로써 외로운 모든 사람들에게 시대의 어른으로서 함께해 주셨을 텐데
지금 이 망나니 칼춤 추듯 하는 시대에 선생님의 부재가 한없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나는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한없이 무지함을 느끼고,
알면 알수록 한없이 고독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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