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센델)

해미일 2024. 1. 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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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한 번도 능력주의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지 않았음을 알았다. 모두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태생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이동성, 즉 사회적 계급의 높은 사다리로 이동할 수 있다. 모두에게 기회는 공평할 것이며, 그 노력의 결과는 노력한 자의 것이다.

마이클 센델은 이러한 외침이 가지는 어두운 면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통찰력 있게 짚어 내었다. 능력주의는 곧 학력주의로 이어졌고, 고등교육 기관들은 능력 있는 인재들의 선별기 역할에 집중했다. 그러나 공평한 기회는 공평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미국 내 최고 학부의 재학생들은 소득 피라미드의 최상급 가정의 자녀들로서

그들 부모의 성공을 대물림 받고 있었고,

저소득 층의 자녀들은 극 소수만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으며, 극소수만 사회적 이동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는 사회적 성공을 이룬 엘리트들이 가지는 능력주의로 인한 오만함이며

뒤처지고 탈락한 사람들이 가지는 자책감과 스스로에게 느끼는 불만감이다.

오늘날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능력주의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의 성공이 온전히 본인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타고난 재능도 시대적 상황과 그 재능의 희소성 등 우연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으며 그리고 알게 모르게 공동체로부터 제공받은 보이지 않는 배려와 혜택들까지 따진다면 온전히 스스로의 능력만을 가지고 이룬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현재의 경제 정치적 사상이 사회의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온전히 한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그에 따라 고학력자가 좋은 직업, 부와 사회적 명성까지 독식하고

저 학력자는 저소득에 사회적 루저로 취급되며 패배감에 사로잡히는 것을..

그리고 포퓰리즘의 반격으로 비유되는 미국의 2016년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를 통해 저학력 노동자들의 분노는 무엇으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이는 저학력, 저소득의 불평등 때문만은 아니며

각자 시민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버리게 만든 사회적 인식 문제 즉, 스스로 지역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던 예전에 비해

오늘날 그것이 빠져버린 노동자들의 상실감을 세심하게 짚어내었다. 초반에는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공감되지 않았으나,

기회는 공평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수 있었다. 사회가 인정하는 성공은 고학력 엘리트들이며, 고소득을 창출하는 직업이며

우리가 그것을 성공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그 근본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 학력을 가진 고소득의 두뇌회전 빠른 금융가 보다, 제조업 생산직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노동력이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임을 일깨워 주었다.

마이클 센델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의 세계화 속에 우리가 가치있게 여겨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자유시장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모두 결국에는 능력주의로 기운다. 성공에 대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를 거르지 않으며, 능력주의가 빠지기 쉬운 함정 즉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이라는 함정을 피하지 못한다. 이는 부 분적으로 그들이

개인 책임을 분해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p.239)

 

고등교육에서의 능력주의 혁명은 그 초기 지지자들이 기대했던, 그리고 교육계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지금도 계속 약 속하고 있는 사회적 이동성과 기회의 확대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과거 미국의 유수 대학들은 코넌트가 나쁘게 본 '거들먹 거리는 기득권 세습 엘리트'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습 특권 귀족제는 능력주의 엘리트층에게 자리를 내주었으며,

그들은 지금 그들이 내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특권을 갖고, 이를 확고부동하게 하려 못질을 해댄다. (p.262)

 

'우리는 개인으로서 우리 운명의 책임자다'라는 도덕률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우리가 잘한 덕이며, 실패하면 우리가 잘못 한 탓이다. 사기를 올려주는 말 같지만, 개인 책임에 대한 집요한 강조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상승 추세에 대응할 연대 의 식이나 연대 책임을 떠올리기 어렵게 한다. (p.287)

 

세계화에 뒤처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은 번영하는 동안 경제적 곤경에 처했을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종사하는 일 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함을 깨달았다. 사회의 눈에, 그리고 아마 스스로의 눈으로도 그들의 일은 더 이상 공동 선에 대한 가치 있는 기여라고 비치지 않는다. (p.309)

 

지난 40년 동안, 시장 주도적 세계화와 능력주의적 성공 간은 힘을 합쳐서 이런 도덕적 유대관계를 뜯어내 버렸다. 그들 이 뿌려놓은 글로벌 보급 체인, 자본의 흐름, 코즈모폴리턴적인 정체성은 우리가 동료 시민들에게 덜 의존적이 되고, 서로 의 일에 덜 감사하게 되고, 연대하자는 주장에 덜 호응하게 되도록 했다.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은 우리 성공은 오로지 우리 가 이룬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대관계의 상 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 속에 있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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