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6 15:39
이순신의 바다 (황현필)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영웅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나 역시 이미 알고 있는 그의 일대기와 임진왜란에 대한 복기 정도로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책은 깔끔하고 보기 좋게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전쟁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컬러로 된 자료들이 꼼꼼하게 수록되어 있었고
이순신 장군이 지휘했던 전쟁마다 아군과 적군의 전선 규모와 사망자, 부상자 등
피해 상황까지 상세한 사료가 제시되어 있었다.
저자는 주관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나는 이 책을 단 몇 시간 만에 읽어 버렸다.
이 책이 주는 엄청난 몰입감은 책장을 빠르게 넘어가게 했고,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생동감마저 느끼게 했다.
책을 읽어갈수록 난 울컥한 감정과 복받치는 감정으로 눈물을 참 많이 흘렸다.
무엇 때문에 목이 아프도록 치밀어 오르는 감정 속에 빠져들었는지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관료들이 치가 떨리도록 무능했던 것을,
또한 목숨을 바쳐 최후까지 싸운 수많은 의병, 승병, 장수, 병사들의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정신을..
그리고 이순신이 무엇과 어떻게 싸웠는지를...
이미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그런데도 새삼스레 복받치는 눈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러 가지 감정의 결과였지만, 가장 큰 것은 내가 그에게 빚을 졌다는 벅찬 미안함이었다.
이순신이 위대한 것은 그가 싸웠던 것이 왜군뿐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대의 불의와 싸웠으며, 스스로의 두려움과도 싸워 결국 이겼다.
무능했고 졸렬했던 임금과 부패한 관리들, 전공에 눈이 멀어버린 동료, 두려움에 굴복한 모든 것들과 싸웠다.
경상도 바다를 이순신만큼만 지켜줬어도 왜군은 우리나라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을 것이며,
우리 강토를 유린하고 양민들을 도륙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전쟁에서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지켜낸 이들에게 이 나라의 현재를 빚졌다.
또 그렇게 수많은 충성스러운 백성들이 죽어나간 이면에는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고 대대로 호의호식하는 자들도 있었음을 안다.
그것은 지금 우리 시대까지 거슬러 내려와 현재 진행형이다.
이순신은 그 바다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잃고 동료를 잃고 아끼던 병사들을 잃고 하나뿐인 목숨까지 잃었다.
수많은 전투에서 그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웠을까?
원균이 공명심과 질투에 눈이 멀어 죽은 왜적의 수급을 베어 조정에 바치는 동안
이순신은 우리 백성을 지키고 한 명의 왜군도 살려 보내지 않기 위해 싸웠지만,
세상은 왜 번번이 간신배의 손을 들어주는가? 지금까지도
아둔하고 졸렬한 왕은 그의 충심을 알지 못했고, 간신들은 그를 음해하였다.
그는 왜적과의 싸움보다 당연히 나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우리 편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억울함과 원통함이 솟구쳐 올랐다.
너무나 담담하게 쓰인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부당한 자들에게 자신을 변호하기 보다 그저 백성을 위해 싸울 뿐이었다.
어수선한 그 모든 상황들을 한켠으로 밀쳐두고, 끝내 흔들림 없이 나라에 대한 충(?)을 실현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 중에 잃고, 모함을 받으면서도 나라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미안해서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목이 메다 못해 아파졌다.
이순신이 파직되어 옥에 갇혀있는 동안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은 조선의 수군을 괴멸시켰고,
제 한 목숨을 부지하고 자 백성과 자신의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친일 사관을 가진 세력들로 인해 이순신을 폄훼하고자 원균을 치하하는 족속들이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임진왜란 당시의 썩어빠진 조정과 간신배들을 생각나게 한다.
아무튼 그렇게 궤멸된 수군을 다시 일으켜 겨우 13척의 배로 왜선 300여 척을 상대로 싸운 것이 명량해전이다.
출정하는 동안 겁에 질린 아군의 판옥선 1척은 도망가고, 총 12척의 배로 왜군의 선발대 133척을 앞둔 상황에서
이순신의 장군함이 돌진할 동안, 나머지 아군 판옥선들은 돕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누군들 목숨이 귀하지 않겠는가?
결과야 우리가 알고 있듯 승리였지만, 위기의 매 순간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싸웠을까?
이순신 장군은 결국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왜적들을, 우리나라를 짓밟았던 적들을, 이순신은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한쪽은 살기 위해 싸웠고, 한쪽은 민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싸웠다.
이미 왜군은 전쟁을 포기하고 물러나는 순간이라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론이 나 있었지만
그 마지막 전투에서 조선은 이순신을 잃었다.
당시 정황으로 보아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다고 해도 그를 두려워하고 시기한 임금과 부패한 무리들로
인해
고초를 겪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선조의 거듭되는 졸렬한 처사에 신하로서 지켜야 하는 임금에 대한 예를 생략하는 등
이순신이 항명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무나도 극적인 그의 삶이 노량해전에서 멈춘 것은 세상의 부당함에 더는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한
운명의 배려였을까?
이 책을 통해서 막연하게 그리고 있었던 이순신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고
그렇게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모진 역사의 한 가운데 우뚝 서서 오직 스스로의 신념과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며, 전쟁의 결과를 바꿔놓은 그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